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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월호 vol.75] 시붐쓸잡: 연세 아이스하키, 끝나지 않은 대서사시의 페이지를 넘기며
작성자 시스붐바 심채리작성일 2026.09.16 조회 10

 


 

[시스붐바=글 심채리 기자, 사진 시스붐바 DB]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스포츠계에서 대기록이 경신될 때마다 따라붙는 격언이다. 2026 정기 연고전과 새 시즌을 앞둔 가을의 초입, 지난 시즌 압도적 대승의 신화를 썼던 연세대학교 아이스하키부 앞에도 어김없이 이 명제가 놓였다. 

 

돌이켜보면 연세대학교 아이스하키부의 역사는 늘 기록을 세우고, 또 그 기록을 깨부수며 스스로를 증명해 온 끈질긴 여정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쌓아 올렸던 ‘정기 연고전 16년 연속 무패’ 대기록이 멈춰 섰을 때도, 기나긴 퐁당퐁당 징크스의 터널을 거쳐 다시 완벽한 압승의 역사를 썼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나의 기록이 멈춰 선 자리는 끝이 아니다. 지나온 영광과 시련을 딛고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갈 출발점일 뿐이다. 다가오는 2026 정기 연고전을 앞두고 연세대학교 아이스하키부의 지난 대서사시를 돌아보고 그 다음 페이지를 조심스레 넘겨본다. 

 

[1997~2013] 16년 무패 신화

 

 

 

 

연세 아이스하키의 정체성 

 

스포츠에서 ‘절대강자’라는 타이틀은 객관적인 전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1997년부터 시작된 연세대학교 아이스하키부(이하 연세대)의 16년 무패 신화가 더욱 위대한 이유는 그들이 세간의 전력 열세 평가마저 조직력과 끈기로 역전시킨 투지의 팀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세대의 저력은 2000년대 중반의 행보에서 드러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고려대학교 아이스하키부(이하 고려대)는 창학 100주년(2005)을 대비해 대대적인 팀 정비를 단행했다. 고려대의 적극적인 스카우팅 속 고교리그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던 선수들이 대거 고려대로 진학하며 연세대는 전력이 밀린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는 정기 연고전(이하 정기전) 패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6년, 오히려 정기전 역사상 최초의 4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일궈냈다. 외부 조건과 무관하게 무패가 당연하다는 마음가짐, '절대강자' 연세대의 진정한 무기였다. 

 

 

 

 

정기 연고전 최다 점수 차 승리: 2010 정기 연고전 8-1 승

 

이러한 연세대의 위닝 멘탈리티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는 정기전 역대 최다 점수 차(8-1) 승리를 기록한 2010 정기전이다. 당시 정기전을 앞두고 양교 간에 크고 작은 이견이 생기며 장외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국제 챔피언스 리그 룰(4심제)을 도입하고 고양어울림누리 아이스링크로 경기장을 변경하는 등 여러 행정적 변수가 겹치며 양교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해당 논의는 정기전 불과 며칠 전까지 이어졌으며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최종 결정권을 위임할 정도로 과열됐다. 

 

결국 고려대의 주장대로 4심제 도입과 경기장 이전이 결정됐고, 2010 정기전 당시 연세대는 고려대의 거센 압박 속 선취골을 허용하며 고전했다. 1, 2피리어드 고려대의 일방적인 유효슈팅이 이어졌으나 골리 박성제(사회체육학과 07, 이하 사체)의 선방으로, 고려대는 단 한 차례의 추가 득점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 사이 전열을 재정비한 연세대는 득점포를 가동했고, 김상욱(체육교육학과 07, 이하 체교)의 활약에 힘입어 전세를 역전시켰다. 승부의 분수령은 체력에 있었다. 고려대는 연세대의 12년 무패 기록을 저지하려 3라인을 가동하며 강공을 펼쳤으나, 이는 후반부 급격한 체력 소진으로 이어졌다. 반면 연세대는 동요 없이 4라인 로테이션으로 체력을 비축했다. 3피리어드 연세대는 체력적 우세를 앞세워 적극적인 스케이팅과 압박으로 고려대를 몰아붙였고, 해당 피리어드에만 다섯 골을 넣으며 8-1 대승을 완성했다. 정기전을 둘러싼 논란과 선취골 허용 위기를 투지로 잠재운 16년 무패 신화의 찬란한 한 페이지였다. 

 

 


 

 

수면 위로 드러난 균열: 2013 정기 연고전 2-2 무

 

지난 15년 간의 무패 신화는 2013 정기전을 거쳐 ‘16년 무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연장됐다. 그러나, 무패 신화 연장의 이면에는 훗날 닥쳐올 징크스의 복선이 짙게 깔려 있었다. 1피리어드 파워플레이 상황 오진우(체교 10)의 선취골 이후 연세대는 곧바로 동점골을 허용했고, 접전 끝에 경기 종료 3여 분을 남겨두고 터진 신상훈(체교 12)의 동점골로 간신히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이날 연세대는 2피리어드 5대3의 절대적인 수적 우위 상황을 맞이하고도 오히려 고려대에 정면 돌파를 허용하며 숏핸디드 역전골을 내줬고, 수비 실수를 연발했다. 골리 한재익(스포츠레저학과 10)의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공격 전개에서도 패스 실수로 고려대에 역습의 빌미를 수차례 제공했고, 상대 골리 박계훈(고려대 11)이 높은 세이브율을 보이는 중장거리샷만 시도했다. 무엇보다 연세대는 경기 후반 사실상 2라인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체력적 어려움을 자처했다. 2010 정기전 대승의 원인이었던 4라인 운영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세대는 16년 무패 타이틀을 사수했으나, 2013 정기전은 실질적으로 조직력과 집중력 중심의 연세대 정체성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음을 알린 경기였다. 

 

 


 

 

[2014~2024] ‘퐁당퐁당 징크스’의 늪

 

 


 

 

17년 만의 패배: 2014 정기 연고전 2-3 패

 

2013 정기전에서 감지됐던 균열은 이듬해 2014 정기전에서 ‘17년 무패 신화 좌절’이라는 참사로 돌아왔다. 결과는 2-3 석패. 1997년부터 장장 16년 동안 이어 온 무패 대기록이 끊긴 순간이었다. 

 

가장 큰 패배 요인은 멘탈적인 부분에 있었다. 1피리어드 시작 5분 만에 선제골을 허용한 연세대는 이어진 파워플레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고려대에 숏핸디드 추가골을 헌납하며 급격히 흔들렸다. 1피리어드에만 내리 3실점을 내준 탓에 경기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다급해진 연세대는 전년도 정기전의 패착을 그대로 반복했다. 또다시 패스 실수로 상대에게 역습 기회를 헌납했고, 골문 앞에서의 셋업플레이와 각도를 고려한 슈팅 대신 중장거리샷을 남발하다 번번이 박계훈에게 가로막혔다. 2피리어드 종료 2초 전 전정우, 3피리어드 후반 엠티넷 상황 이강수(이상 체교 13)의 연이은 득점으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으나, 경기 초반 벌어진 격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특수 상황에서의 낮은 공격 성공률이 치명적이었다. 연세대는 3피리어드 46초간의 5대3 수적 우위 상황을 포함해 무려 7번의 파워플레이 기회를 얻고도, 단 한 번의 득점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한 점 승부가 기본인 단기전에서 파워플레이의 실패는 곧 패배를 의미함을 실감한 경기였다. 

 

한 번 무너진 균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기전 패배의 충격은 하반기 비정기 연고전(이하 비정기전, 제34회 유한철배 전국 대학부 아이스하키 대회, 2014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 제69회 전국 종합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까지 이어져, 연세대는 당해 고려대를 상대로 1무 3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주축 디펜스들의 줄부상 악재 속에서 수비마저 흔들린 연세대는 결국 ‘퐁당퐁당 징크스’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설욕과 남겨진 징크스: 2015 정기 연고전 4-3 승

 

패배의 충격을 딛고 맞이한 2015 정기전, 연세대는 4-3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반격의 서막을 열었다. 고려대 상대 673일 만의 승리였다. 전년도 패배의 아픔을 겪었던 골리 김권영(체교 14)이 수차례 선방했고, 2라인(김형겸(체교 13)-전정우-이총현(체교 15))의 득점력이 폭발하며 경기를 주도했다. 2014 정기전에서 9.8%에 그쳤던 파워플레이 성공률을 16.7%로 끌어올린 점 또한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연세대는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2015 정기전 또한 페널티 관리와 집중력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날 연세대는 8개의 페널티를 범하며 숏핸디드 위기를 자초했다. 선수들의 슛블락으로 페널티 킬링 자체는 성공했으나, 숏핸디드 상황 종료 직후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연이은 실점을 허용했다. 3피리어드 두 차례의 실점 모두 페널티 킬링 성공 6초와 11초 후에 발생했다. 라인 교체 과정 어수선해진 찰나의 틈이 실점으로 직결된 것이다.

 

단기전이라는 극한의 압박감 속에서 발생한 비전략적 페널티, 그리고 직후 라인 교체 타이밍의 미세한 틈새. 연세대는 이 작은 균열을 메우지 못한 채, 이후 정기전 무대에서 승패를 반복하는 징크스의 터널로 진입하게 된다. 아픔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당시 주장이었던 김태겸(체교 12)은 "개구리가 잠시 주저앉는 이유는 좀 더 높이 뛰기 위해서다. 더 길고 오래될 역사를 쓰기 위해 잠시 주저앉았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그의 말처럼, 길고 어두웠던 이 징크스의 시간은 연세대 왕조를 재건하기 위한 혹독한 담금질의 과정이었다.

 

 

 

 

[2025~현재] 징크스 타파를 위해

 

 

 

 

정기 연고전 최초 셧아웃 승리: 2025 정기 연고전 6-0 승

 

2025 정기전, 연세대는 집중력 및 결정력 아쉬움, 특수 상황에서의 공격력 문제를 개선했다. 그 결과는 정기전 60년 역사상 최초의 6-0, 완벽한 셧아웃 대승이었다. 세부 내용은 본지 코너를 참고하자.

 

이 압도적인 대승은 과거 팀을 옭아맸던 약점이 보완됐음을 뜻했다. 골리 송재원(스포츠응용산업학과 22, 이하 스응산)을 최후방에 둔 수비진은 거듭된 숏핸디드 위기에도 박스 포메이션을 사수하며 고려대의 슈팅 레인을 봉쇄했다. 역으로 찾아온 파워플레이 기회에서는 유기적인 패스와 주저없는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무엇보다 3피리어드 후반 하키파이트와 미스컨덕트 페널티가 난무하는 어수선한 흐름 속에서도 철저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견고한 수비에 마지막 '한 끗' 결정력을 더해 완벽한 위닝 멘탈리티를 회복하며, 연세대 독주 체제의 강력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순간이었다. 이어진 2025 KUSF 대학아이스하키 U-리그 1라운드 비정기전에서도 7-0 대승을 기록하며 고려대를 압도했다. 

 

 

 

 

다시 써 내려갈 푸른 신화: 2026 정기 연고전

 

2026 정기전을 준비하는 연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냉철하다. 이종수 감독의 실용주의 지도 철학 아래 6-0 셧아웃 승리의 기억을 거름삼아 위닝 멘탈리티를 이어가되 자만을 경계한다. 

 

현역 시절 16년 무패 신화의 중심에 섰던 손호성(사체 01)・이용준(체교 03)・김원준(체교 10) 코치 또한 각각 골텐딩, 공격과 수비 등 본인만의 영역에서 선수들을 지원한다. 연세대가 대학리그 전반에서 명백히 전력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틀 안의 자유로움’과 ‘빠른 템포’라는 연세대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코칭스태프는 "(이번 정기전은) 퍽 소유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비 집중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상대의 허를 찌르는 깜짝 패턴 플레이"를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비록 기록이 깨지기 위해 존재할지라도 멈춰 선 기록은 끝이 아니라는 것, 지나온 영광과 시련은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갈 출발점이라는 것. 연세대는 이 명제를 지난 세월 동안 몸소 보여줬다. 연세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10월 정기전을 앞두고 연세대의 대서사시는 이제 막, 가장 눈부신 다음 페이지를 넘길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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