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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SF ARCHIVE] ‘망각과 기억 사이’ 고려대 아이스하키부 이우경_1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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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USF 심채리작성일 2026.07.31 조회 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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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SF=안암/심채리 기자] 스포츠 선수에게 ‘망각’은 어떤 의미일까? 순간의 실책과 실점은 종종 짙은 잔상을 남긴다. 누군가는 뼈아픈 실책을 가슴에 품고 다음을 기약하고, 또 누군가는 패배의 미련을 거름 삼아 성장한다. 하지만 잔상은 종종 독이 된다. 등 뒤에 꽂힌 실점의 잔상에 얽매이는 순간, 플레이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선수들은 기억과 망각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셈이다.
이 외줄타기를 누구보다 무던하게 해내는 선수가 있다. 7대 0 패배 앞에서도 “30분이면 다 까먹는다”며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고려대학교 아이스하키부 골리 이우경이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살이 타는 게 싫다며 두꺼운 과잠을 챙겨 입고, 카메라 앞에서는 쑥스러워 뒷머리를 긁적이는 스물한 살. 휴일에는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무던하고 조용한 일상을 좇는 영락없이 앳된 대학생이다.
빙판 위에서 이 무던함은 가장 견고한 무기가 된다. 지난 플레이의 잔상은 과감히 망각하고 오직 눈앞의 퍽에만 몸을 던진다. 앳된 얼굴 뒤 무던함을 숨긴 애늙은이 수문장, 이우경을 만나 봤다.
# 우연이 이끈 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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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이우경 선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해요. 이우경 선수는 어떤 아이였나요? “저는 운동 끝나고 친구들이랑 밥 먹고 뛰어놀다가 집 가서 쉬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공부보다는 확실히 몸 쓰는 걸 즐겼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본 엘리베이터 전단지가 시작이었다고 들었어요. 취미로 스케이트를 신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하고 자란 친구들이 세 명 있는데, 처음에는 그 친구들이랑 같이 훈련 나가는 게 그저 재밌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팀 골리 누나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골리 포지션을 시도해 봤죠. 제게 골리로서 재능이 좀 있었나 봐요. (웃음) 부모님께서 끝까지 해보라고 먼저 권유하시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빙판 위에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이스하키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감독님 동생분께서 중동중학교 아이스하키부 감독님으로 계셨어요. 가끔 중동중 훈련에 놀러 가서 형들을 따라 하다 보니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꼈죠. '엘리트 쪽으로 가보면 더 재밌겠다,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내 미래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낯선 타지에서의 2년
![]() 웃는 이우경 선수
중학교 졸업 직후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어요. 일반적인 유학 시기는 아닌데 특별한 배경이 있었나요?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외국에서 아이스하키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쩌다 보니 그해에 저 말고도 다른 친구 한 명이 골리로 입학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한 학년에 골리가 두 명인 건 흔치 않거든요. 경기 수도 적은데 이렇게 두 명이서 나눠서 뛸 바에는 차라리 더 큰 무대로 나가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렇게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꿈꾸던 캐나다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많이 힘들었어요. 타지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게 생각보다 벅차더라고요. 다른 언어와 피부색을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도 있고요. 그리고 부모님이랑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불안감도 있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씩 꼽아 본다면요? “경기 끝나고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시합이 끝나면 친구들은 부모님과 시간을 갖는데, 저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장비 들고 바로 버스로 향했던 것 같아요. 반대로 가장 행복했던 건 ‘쇼케이스’라고 다른 지역 원정 시합을 갔을 때예요. 쉬는 시간에 팀원들과 다 같이 산책하고 뛰어놀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캐나다 유학 시절 성적 2022년 유학 첫해 4경기를 소화했어요. 22-23 Mount Academy Saints U17(CSSHLE U17) 2게임 세이브율 0.907 7골 허용, 68 세이브 1승 1무승부 Mount Academy Saints U17(PPHL 16U) 2게임 세이브율 0.750 7골 허용, 21 세이브
“첫해는 환경적으로도, 제 노력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아요. 일단 학교 컨택부터 어려움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하면 중학교 때부터 학업에 소홀하게 되는데, 외국 학교들은 성적을 엄격하게 보더라고요. 막상 외국 학교 팀과 컨택이 돼도 제 성적이 발목을 잡았죠. 급하게 팀을 찾다 보니 서드 골리로 들어가게 됐고, 팀 사정상 출전 기회를 많이 못 받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만큼 못 보여준 것도 커요. 제 노력이 부족해서 적게 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듬해 팀을 옮기고 출전 시간과 세이브율에서 모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어요. 23-24 Lloydminster Athletics 18U(JPHL 18U) 16게임 0.886 58 450 9승 7패 플레이오프 2경기 0.860 1패
“두 번째 시즌 때는 환경부터 크게 달라졌어요. 첫해는 학교 기숙사를 사용했는데, 이때 학교를 옮기면서 친구 집에서 지냈어요. 일종의 홈스테이 같은 거였죠. 훨씬 안정적인 환경에서 편하게 학교 다니고 운동했어요. 특히 현지 부모님들과 소통하며 유학 생활에 재미를 붙이니까 온전히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성적도 따라왔습니다.”
한국과 북미 아이스하키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잖아요. 직접 부딪히며 느낀 차이점이 있다면요? “국내는 개개인의 스킬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걸 지향하는 반면, 북미는 하나의 팀으로서 움직이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네. 제 유학 시기가 다소 늦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시절 경험이 제게 큰 도움이 됐거든요. 골리는 스킬적인 부분 말고도 게임을 직접 뛰면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해요. 상황 하나하나를 읽고 맞춰서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게임을 많이 뛰어야 하죠. 캐나다 유학이 딱 이 경험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 경복고등학교 시절 이우경 선수 ⓒ 경복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와 경복고등학교로 편입했어요. 국내 복귀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외국에서 1년을 더 뛰고 주니어리그를 갈지, 아니면 한국에 돌아와 1년 뛰고 (체육특기자 전형 조건을 채워) 제가 어릴 적부터 목표로 했던 고려대학교에 진학할지 기로에 서 있었거든요. 둘 다 제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더 어려웠어요. 마친 경복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 감독님께서 골리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주셨고,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국내 복귀 직후 제44회 서울특별시장기 고등부 아이스하키 대회, 제106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고등부 부문 우승을 이끌었죠.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그저 너무 재밌었어요. (웃음) 저학년을 안 하고 바로 고학년으로 왔다 보니까 더 편했고 팀원들 대부분이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같이 뛰던 친구들이었거든요.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고 낯가리고 이런 게 전혀 없어서 온전히 아이스하키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밥맛도 좋더라고요. 그렇게 아이스하키에만 푹 빠져 지냈습니다.”
![]() 민주 광장 앞 이우경 선수
낯선 타지에서의 생존 경쟁은 이우경에게 무던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여줬다. 이어지는 2편에서는 고려대학교 이우경의 영리하고도 단단한 생존 방식을 들여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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