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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 2026년 3월호]안암에서 뉴질랜드까지, 전사들의 뜨거운 '출사표'
작성자 SPORTS KU 이다경작성일 2026.04.03 조회 232


 

[SPORTS KU=글 이다경 기자, 사진 SPORTS KU DB / Flickr 제공]

  어떤 승부에는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 있다. 목숨을 건 전투 직전, 뉴질랜드 전사들이 자신의 내면 에너지를 끌어올리던 하카는, 이제 사각의 필드 위에서 팀의 자부심을 증명하는 고귀한 출사표가 됐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올 블랙스가 은 고사리 문양을 가슴에 품고 하카를 외칠 때, 그 울림은 국경을 넘어 상대 팀의 경의와 관중의 전율을 끌어낸다. 하카가 뉴질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듯, 고려대학교 럭비부 역시 그들만의 구호와 노래로 붉은 투지를 불태운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승리'와 '하나 됨'을 향한 열망은 닮아 있는 두 전사들의 뜨거운 의식을 만나보자.

 

하카란 무엇인가?

 

  하카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이다흔히 하카를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실제로는 의식에 가깝다왜냐하면 하카는 단순한 춤을 넘어 하카를 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정신력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크게 구호를 외치며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서 자신의 가슴과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치고 발을 구른다하카의 가장 대표적인 동작은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미는 것인데이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전통적으로 하카의 목적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자신들에게 방문한 다른 부족을 환영할 때나 전투에 나서기 전 전사들이 결속력을 높이고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행해지기도 했으며 고인을 애도할 때 하카를 하기도 했다따라서 현재에도 하카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다관광객들 앞에서 공연되기도 하고국빈 행사에서 환영 의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심지어 뉴질랜드의 한 하원의원은 의회에서 법안에 항의하는 의미로 하카를 하기도 했다이외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하카 퍼포먼스를 꼽으라면 단연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이 경기 전에 행하는 하카이다뉴질랜드 선수들은 경기 전 하카를 통해 상대팀에게 도전장을 내밀고팀워크를 끌어올린다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하카가 뉴질랜드 대표팀의 출사표가 됐을까그 과정은 뉴질랜드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뉴질랜드 + 하카 + 럭비


 

  뉴질랜드 럭비와 하카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뉴질랜드의 식민지 역사와 뉴질랜드에서 럭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1800년대 초반뉴질랜드는 공식적인 통치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외부에서 여러 세력이 유입되며 사회가 혼란한 상태였다이에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사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영국에 보호를 요청했다영국이 이에 응하면서 마오리족과 영국 사이에는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됐고뉴질랜드는 영국의 공식적인 식민지가 된다이후 1870년 영국에서 유학하며 럭비를 처음 접한 찰스 먼로는 고향인 뉴질랜드 넬슨에 돌아와 럭비를 소개했고이것이 뉴질랜드 럭비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후 1888뉴질랜드 럭비 사상 최초로 장기간의 해외 원정 경기를 목적으로 뉴질랜드 네이티브 팀이 결성됐다. ‘뉴질랜드 네이티브 팀은 마오리족 선수와 마오리 혈통의 혼혈 선수백인 뉴질랜드인이 모두 섞인 팀이었다당시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이 다소 미약했는데, ‘뉴질랜드 땅에서 태어난 이들이 하나로 뭉쳐 럭비의 종주국인 영국에 럭비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그리고 이때부터 뉴질랜드 선수들은 팀 내의 결속력을 다지고고유한 문화와 정신을 가진 뉴질랜드인임을 보여주기 위한 선포로써 경기 전 하카를 하기 시작했다.

 

1905년의 전설올 블랙스의 탄생

  하카가 전 세계에 각인된 결정적 계기는 1905년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해외 원정이었다대표팀은 1905년에서 1906년까지 영국프랑스미국을 순회하면서 총 35경기를 치르며 34승을 거뒀다당시 검은 유니폼을 입은 뉴질랜드 대표팀을 본 현지 언론은 올 블랙스라는 별명을 붙여 불렀고이 별명은 현재까지도 뉴질랜드 남자 럭비 대표팀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올 블랙스는 35전 34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경기 전에 하던 하카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됐다하카를 수행한 뉴질랜드 대표팀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며 이때부터 하카는 뉴질랜드 럭비의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 됐다.

 

하카의 가사

  이렇게 하카는 뉴질랜드 럭비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2005년에는 1905년 투어 100주년을 맞아 올 블랙스만의 하카 곡인 카파오팡오가 공개됐다제목인 카파오팡오는 마오리어로 검은 옷을 입은 팀을 뜻하며마오리 문화와 관습 전문가인 데릭 라델리가 올 블랙스를 위해 작사작곡한 노래이다원문은 마오리어이며현재까지도 하카를 할 때는 마오리어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가사에는 뉴질랜드의 상징인 은 고사리를 넣어 뉴질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뉴질랜드의 땅과 검은 유니폼을 입은 전사들을 찬양하는 내용의 곡이다보통 마오리족 출신인 주장이 하카를 리드하며나머지 선수들은 리드에 맞춰 하카를 수행한다현재는 카파오팡오가 탄생하기 전까지 대체로 사용되던 곡인 카마테를 기본으로, ‘카파오팡오는 상황에 맞춰 때때로 수행되고 있다전문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카파오팡오의 가사]



붉은 포효와 승리의 항해고려대 럭비부가 필드 위에 새기는 불멸의 출사표

  고려대 럭비부만의 독보적인 '출사표'는 무엇일까그 답은 필드를 울리는 승리호와 관중석을 하나로 묶는 뱃노래에 있다.

  먼저 '승리호'는 고려대학교의 가장 상징적인 응원 구호 중 하나이다. “우리는 고대나가자싸우자이기자헤이 고대야!”라는 강렬한 외침은 필드 위 선수들의 심장에 불패의 투지를 불어넣는다이 구호를 가사로 한 응원가 우리는 고대는 정기전 내내 관중석에서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며선수와 학우들이 같은 호흡으로 승리를 갈망하게 만든다.

  여기에 승리의 순간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부르는 '뱃노래'가 더해지면 고려대만의 독창적인 의식은 비로소 완성된다뱃노래는 응원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자정기전에서 득점이 터질 때마다 울려 퍼지는 승리의 찬가이다정면을 보고 어깨동무를 하는 대부분의 응원가와 달리뱃노래는 옆으로 앉아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배를 젓는 형상을 취한다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학우들은 이 리듬에 맞춰 선수들에게 뜨거운 기세를 불어넣고경기 종료 후에는 승리한 선수들과 하나가 되어 기쁨의 항해를 시작한다.

  뱃노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고대 럭비부만의 전통 의식이 펼쳐진다바로 80분간 팀을 이끌며 사투를 벌인 주장이 수만 명의 학우 앞에서 막걸리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켜는 의식이다온몸이 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시는 막걸리 한 사발에는 단순한 술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그것은 승리의 갈증을 해소하는 환희의 상징이자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그리고 고려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 되어 응원해 준 공동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막걸리를 비운 주장이 빈 병을 치켜들고 환호할 때관중석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하며 고대인만의 끈끈한 유대감은 절정에 이른다이 호탕하고 거침없는 모습은 고대인의 기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승리호의 포효가 거친 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북소리라면경기 후 울려 퍼지는 뱃노래는 그들이 흘린 피와 땀에 대한 가장 고귀한 훈장이다붉은 유니폼을 입은 전사들이 학우들과 하나가 되어 부르는 이 노래는뉴질랜드의 하카가 가진 위엄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승리호'로 시작해 '뱃노래'로 완성되는 이 과정은 고대 럭비부원들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갈 자부심의 근원이자어떤 시련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영원한 출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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