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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월호 vol.75] 체인지업: 한국 축구의 잃어버린 4년
작성자 시스붐바 이예겸작성일 2026.09.16 조회 12

※ 본 기사는 시스붐바 2026년 9월호(vol.75)에 게재된 글입니다.

 

 

[시스붐바=글 이예겸 기자, 사진 조선일보, SBS, 한겨레, 뉴스1, 연합뉴스 TV, 매일경제, KBS, OBC 제공]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포르투갈전, 대한민국은 황희찬의 극적인 결승골로 승리하며 16강 신화를 썼다. 당시 유행어였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의미처럼 한국 축구는 꺾이지 않고, 그 앞날은 찬란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4년 뒤,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3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전에서 그 기대는 처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4년이라는 간극 속에서, 한국 축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22년 12월

파울루 벤투 감독 퇴임

2023년 1월 4일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취임

2023년 1~2월

감독 후보군 물색 및 면접

2023년 2월 27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공식 선임 발표

2023년 2월 28일

선임 결과 공식 브리핑

벤투 감독의 퇴임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이하 카타르 월드컵)의 여정이 끝나고 파울루 벤투(Paulo Bento, 이하 벤투) 감독은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이하 2023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잡지 않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국가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벤투의 국가대표팀 감독 임기가 국가대표팀 최장 임기(4년 4개월)였던 만큼 그 후임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렸다. 팬들과 언론이 원한 것은 명확했다. 벤투호가 4년간 보여줬던 빌드업 축구처럼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의 전술을 가진 감독, 그리고 투명하고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후임 감독을 선임하는 것 단 두 가지였다.

2023년 2월 27일,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Jürgen Klinsmann, 이하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선수 시절 좋은 활약을 보였던 감독이었기 때문에 좋은 결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결정 뒤에는 투명하지 못한 절차가 있었다. 이전의 벤투 감독 선임 당시 김판곤 전 국가대표선임위원회 위원장 체제에서 보였던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감독 선임 절차와 비슷하게 마이클 뮐러(Michael Müller) 전력강화위원장이 감독 선임을 책임졌지만 이는 대외적인 포장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결정권은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에 있었고 절차적 투명성보다는 일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정들이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을 이끌게 됐다.

출항 초기부터 클린스만호는 구체적인 전술적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하며 의구심을 자아냈다. 뚜렷한 전술 대신, 손흥민(로스앤젤레스 FC),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김민재(FC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핵심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크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축구 팬들의 우려가 쌓였고, 여기에 잦은 해외 체류와 원격 근무 논란까지 겹치며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서의 책임감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64년 만에 우승을 목표로 했던 2023 아시안컵에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 역대급 스쿼드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대표팀은 조별리그부터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객관적 전력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고전하고,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3-3 무승부를 거두는 등 매 경기 수비 불안을 노출하며 졸전을 거듭했다. 공격 상황에서도 패턴 플레이와 상대의 밀집 수비를 파훼할 전술이 전무했고 오히려 중원 공간을 쉽게 노출하며 상대에게 위험한 찬스를 내주는 경우가 빈번했다. 토너먼트에 돌입해서도 경기력은 개선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 호주와의 8강전 모두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터뜨리며 연장 혈투 끝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언론과 팬들은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나는 좀비 축구라 칭찬하기도 했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이는 감독의 체계적인 전술로 얻어낸 승리가 아니라 부족한 전술에 90분 내내 끌려다니다 경기 막판, 선수 개인의 투지로 경기 결과를 억지로 메운 것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클린스만 감독의 장점이라고 내세운 선수단 장악에도 실패한 대목이 있었다. 토너먼트의 중요한 길목, 그것도 요르단과의 4강전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불거진 선수단 내부의 갈등은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른바 '탁구 게이트'로 알려진 이 사건은 단순히 선수들 간의 갈등을 넘어서 팀을 하나로 묶고 선수단을 관리해야 할 감독의 리더십이 부재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사건을 겪은 국가대표팀은 경기력이 좋을 리 없었으며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유효슈팅 0개를 기록하는 등, 90분 내내 상대의 맹공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다 0-2로 완패했다. 결국 아시안컵 이후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한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을 부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경질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내리막길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

2024년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및 전력강화위 재가동

2024년 3월 ~ 6월

잇따른 협상 결렬 및 2차례 임시 감독 체제

2024년 6월 말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 돌연 사퇴

2024년 7월 초

이임생 기술총괄이사 유럽 출국

2024년 7월 8일

홍명보 감독 선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국가대표팀은 초유의 임시 감독 체제로 2026 FIFA 월드컵 북중미(이하 북중미 월드컵) 지역 예선을 준비해야 했다. 황선홍, 김도훈 두 감독이 잇따라 임시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정식 사령탑 선임은 하염없이 지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감독 선임을 주도하던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마저 돌연 사퇴하면서 차기 감독 선임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권한을 이어받아 유럽으로 출국했고, 외국인 후보들과 최종 면접을 진행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의 최종 발표는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감독을 내정했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발표가 축구 팬들에게 더욱 충격이었던 이유는 발표 3일 전 까지만 해도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 부임을 부정하기도 했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조별리그 탈락을 했던, 축구팬들에게 좋지 않게 기억돼 있던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였다. 전력강화위원회가 약 5개월간 수립해 온 평가 기준과 검증 시스템은 지난 클린스만 감독 때와 마찬가지로 최종 결정 단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임생 이사는 외국인 후보들에게 요구했던 전술적 비전을 확인하는 심층 면접이나 PPT 발표 등 필수적인 검증 절차를 홍명보 감독에게는 모두 생략한 채 감독직을 제안했다. 당시 K리그1에서 울산 HD FC를 이끌고 있던 현직 사령탑이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K리그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클럽의 감독을 국가대표팀으로 차출하는 것은 K리그 시스템과 국내 축구 팬들에게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은 분명했다.

 



AGAIN 2014, 충격의 탈락이었던 북중미 월드컵

홍명보 감독의 첫 시작은 홈 경기,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였다. 홍명보 감독의 첫 경기였던 만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으나 이 경기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거뒀다. 전술적 부분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으며 상황에 맞는 전술 변화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에도 객관적 전력 아래에 위치한 상대에게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며 아슬아슬한 경기를 선보였다. 48개국으로 늘어난 월드컵 티켓 수의 이점으로 비교적 손쉽게 북중미 월드컵 티켓을 따내긴 했으나 팬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3백 전술에 대한 비판이 컸다. 북중미 월드컵 예선 중 4백에서 3백으로 전술 변화를 택하며 수비적인 안정성을 우위로 둔 홍명보 감독이었지만 오히려 3백 시스템은 공수 양면에서 구조적 결함을 노출하고 말았다. 먼저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소속팀 대다수는 4백을 주로 활용하는데 짧은 소집 기간 동안 선수들에게 익숙지 않은 3백을 사용하며 선수들이 전술에 적응하지 못했다. 또한 수비 밸런스를 두는 3백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전방 압박 상황에서도 윙백의 압박 타이밍이 번번이 늦어지며 상대에게 전진 패스 공간을 내줬고, 이는 수비 라인이 허물어지는 원인이 됐다. 빌드업과 공격 전개 역시 단조로움에 갇혔다. 상대가 중앙 간격을 좁혀 밀집 수비를 펼칠 때 이를 뚫을 수 있는 부분 전술이 전무했다. 중앙 돌파가 막히면 측면으로 공을 돌려 의미 없는 크로스와 백패스만 반복하는 정적인 패턴이 이어졌다. 3백의 스토퍼가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내는 역동적인 움직임도 부재했다.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서 홍명보 감독은 뛰어난 용병술로 체코와의 경기에서 2-1 역전승을 거뒀다. 개최국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0-1로 패배했지만, 본선에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준 만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남아프리카공화국전에서는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전술적 문제들이 마지막 경기에서 전부 나오며 패배했고,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결국 홍명보 감독의 자진 사퇴와 함께 대한민국은 48개국 중 34위로 월드컵을 마치게 됐다.

한국 축구,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까?

한국 축구의 쇄신을 위해 살펴봐야 할 나라는 라이벌 국가인 일본이다. 최근 몇 년간 국제 무대에서 보여준 일본 축구의 긍정적인 행보는 우연이나 특정 황금세대의 등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축구협회는 2005년, ‘일본의 길’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유소년부터 국가대표팀까지 연결되는 자신들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어냈다. 특히 연령별 유소년 육성, 일본식 축구 전술 완성 등 세세한 로드맵을 세우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행에도 성공했다. 대한민국도 이를 벤치마킹해 단기의 결과만 보지 않고 유소년 육성부터 시작해 엘리트 선수까지 향하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행정 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전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수뇌부들의 독단적인 결정이 개입할 수 없도록, 감독 선임의 평가 기준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감독 선임 이후로는 장기적인 계획 수립이다. 앞서 언급한 일본은 모리야스 하지메(Hajime Moriyasu) 감독에게 9년을 맡기며 감독에 대한 지지를 보내왔다. 벤투 감독 또한 선임 초기, 많은 비난을 받아왔지만 대한축구협회의 믿음 아래서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비록 단기적으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감독이라 할지라도 투명한 절차로 선임됐고 확고한 비전이 있다면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행하는 것이다. 최근 박지성, 박주호 등 젊은 축구인들을 중심으로 한국 축구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국 축구가 더욱 발전하게 되기를 시스붐바가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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