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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SF ARCHIVE] ‘망각과 기억 사이’ 고려대 아이스하키부 이우경_2편
작성자 KUSF 심채리작성일 2026.07.31 조회 21

 



[KUSF=안암/심채리 기자] 스포츠 선수에게 ‘망각’은 어떤 의미일까? 순간의 실책과 실점은 종종 짙은 잔상을 남긴다. 누군가는 뼈아픈 실책을 가슴에 품고 다음을 기약하고, 또 누군가는 패배의 미련을 거름 삼아 성장한다. 하지만 잔상은 종종 독이 된다. 등 뒤에 꽂힌 실점의 잔상에 얽매이는 순간, 플레이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선수들은 기억과 망각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셈이다. 

 

 

이 외줄타기를 누구보다 무던하게 해내는 선수가 있다. 7대 0 패배 앞에서도 “30분이면 다 까먹는다”며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고려대학교 아이스하키부 골리 이우경이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살이 타는 게 싫다며 두꺼운 과잠을 챙겨 입고, 카메라 앞에서는 쑥스러워 뒷머리를 긁적이는 스물한 살. 휴일에는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평온한 일상을 좇는 영락없이 앳된 대학생이다. 

 

빙판 위에서 이 무던함은 가장 견고한 무기가 된다. 지난 플레이의 잔상은 과감히 망각하고 오직 눈앞의 퍽에만 몸을 던진다. 앳된 얼굴 뒤 무던함을 숨긴 애늙은이 수문장, 이우경을 만나 봤다. 

 

지난 1편에서 낯선 타지 생활을 거쳐 단단한 멘탈을 빚어낸 이우경의 과거를 살폈다. 이번 2편에서는 대학리그의 치열한 빙판 위에서 그가 살아남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 고려대 74번

 

 

민주 광장 앞 이우경 선수

 

고려대 입학 직후 선배 전종훈(고려대 22) 선수의 프로 진출 공백으로 U-리그 8경기 중 7경기를 뛰었어요. 


“무겁지만 가벼운 시작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꿈꾸던 학교라 설레기도 했지만 부담감도 분명 있었죠. 체력적으로 한계에 많이 부딪히긴 했지만, 다행히 제가 경기를 뛸 때 긴장하는 편은 아니라 정신적인 압박감은 크지 않았습니다.”

 

등번호 74번도 눈에 띄어요. 골리들이 흔히 쓰는 번호는 아닌데요?


“제가 내슈빌 프레데터스의 유세 사로스 선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작지만 강한 골리라 그 모습을 닮고 싶어서 74번을 골랐습니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33번을 달고 싶었는데, 선배님이 이미 사용하고 계셔서 다른 번호를 찾게 됐어요. 내년에 선배님이 졸업하시면 다시 33번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원래 33번을 달았던 이유도 궁금해요. 


“중학교 입학할 때 졸업하신 선배님(성도현, 닛코 아이스벅스) 번호를 물려받았어요. 그 형이랑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거든요.”

 

 

2025 KUSF 대학아이스하키 U-리그 챔피언결정전 중계 장면

 

지난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요?


“무조건 U-리그 챔피언결정전이요. 저는 이길 줄 알았어요. (웃음) 순식간에 연달아 실점하고 지니까 너무 허무해서 눈물이 났어요. 직후 시상식이 있었는데, 도저히 못 나가겠는 거예요. 벤치에 앉아 있다가 팀원들에게 끌려 나간 아픈 기억이 납니다.”

 

반면 대학 첫 경기였던 U-리그 1라운드 광운대전(3-2)은 여러모로 특별했을 것 같아요. 


“정말 재밌게 뛰었어요. 첫 경기라 저답지 않게 긴장도 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3피리어드 때 슈팅을 많이 받아서 오히려 집중력이 올라갔습니다. 제 100%를 다 보여주진 못했어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데뷔전이었어요.”

 

※ 당시 이우경은 광운대에 선제골을 내줬음에도 3피리어드 3:5 숏핸디드 위기를 넘기며 고려대의 승리를 견인했다.


고등학교 시절 캐나다 리그 경기 수가 더 많았는데도 U-리그가 더 체력적으로 부담됐나요?


“순수 운동량만 놓고 보면 작년 U-리그가 더 힘들었어요. 캐나다는 운동을 적게 하고 학업에 좀 더 투자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희가 고려대라고 해서 그렇게 강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광운대든 경희대든 월등한 점수 차이로 이기지는 못해요. 중간중간 밀리는 상황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U-리그 1라운드 연세대전(7-0)은 쓰라린 경험이었죠.


“제가 연세대를 좀 만만하게 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연세대를 상대하는 거다 보니 준비가 덜 됐어요. 경기 템포가 워낙 빨라서 정신을 못 차렸고, 유달리 그날 경기 흐름도 잘 안 풀렸어요. 다들 제 멘탈 걱정을 많이 하시던데, 다행히 저는 경기 끝나고 30분 지나면 다 까먹는 편이라 금방 회복했습니다.”

 

곧바로 U-리그 2라운드 연세대전(4-3)에서 설욕에 성공했어요. 


“1라운드 대패 이후 저희 골리 코치님(신소정)께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코치님이 강조하신 게 연세대는 패스나 슈팅 템포가 매우 빠르다는 거였어요. 고려대에서 훈련할 때도 고려대 선수들 템포에 맞추기보다는 연세대를 생각하고 더 빠르게 움직이자는 거죠. 이 피드백을 흡수한 게 결정적인 승리 요인이었어요.”

 

마지막 결승골이 터졌을 때 심경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시합 전에 (허)민준(고려대 23)이 형이 이기면 다 같이 놀러 가자고, 크게 쏘겠다는 공약을 걸었어요. 그때가 할로윈이어서 내심 기대했죠. (웃음) 결승골 나오자마자 ‘아 우리 놀러 가겠구나’ 이렇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결국 코치님들이 위험하다고 쉬라고 하셔서 못 놀러 갔지만요.”

 

U-리그 종료 후 이어진 제80회 종합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도 빼놓을 수 없죠. 성인 프로팀 HL 안양을 처음 상대해 본 소감이 궁금해요. 


“HL 안양 선수들이 경험이 많은 만큼 슈팅 타이밍이나 리바운드 반응 속도가 훨씬 빨랐어요. 그렇다고 막 어렵고 짜증 났던 경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U-리그 1라운드 연세대전이 경기 흐름 상으로는 더 힘들었어요.”

 

이후 3주 동안 합숙하며 스케이트를 신지 않고 지상 훈련에만 매진했다고 들었어요. 


“겨울 합숙, 운동을 하면 좋긴 한데……. (웃음) 팀 전체가 매일 크로스핏을 했는데, 몸 만들자는 생각으로 나갔던 것 같아요. 운동 너무 좋죠.”

 

지상 훈련 덕분인지 제107회 동계체육대회에서 두 차례의 셧아웃 승리를 거두며 고려대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어요. 서경민(고려대 23) 선수의 은퇴로 홀로 골문을 지켜야 했죠.

 

“팀에 골리가 저 하나뿐이라 고학년의 역할을 해주고 싶었어요. 당시 제가 1학년이었지만 주전 골리인 만큼 중심을 잡고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려고 했어요. 특히 작년 동계체육대회 때 저희가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했어요.”

 

※ 2025년 2월, 제106회 동계체육대회 결승전에서 고려대는 광운대를 상대로 패하며 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 골리 이우경

 

 

경기 중인 이우경 선수 ⓒ 본인 제공

 

 

그렇다면 ‘골리 이우경’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퍽 트래킹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스킬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퍽을 절대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다니려 해요. 요즘은 더스틴 울프(캘거리 플레임스)를 본받으려고 노력해요. 그 선수가 정말 스케이트를 잘 타고 반응이 빠르거든요.”

 

포스트 플레이가 굉장히 좋다는 평가도 자자해요. 


“아직도 포스트 플레이는 많이 힘들어요. (웃음) 계속 신경 쓰고 있는데, 최대한 퍽에서 눈 떼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읽어가면서 따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실점 직후 물을 마시고 뱉는 루틴이 눈에 띄어요.

 

“저는 늘 실점하면 물을 마시고 엔드라인 끝 펜스 쪽 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쭉 따라가요. 다 돌면 눈을 감고 심호흡한 후 물을 뱉어요. 이게 캐나다 처음 갔을 때 만든 루틴인데요. 골리 캠프에서 이론 수업이랑 프로 선수들 멘탈 관리법을 많이 들으면서 물을 뱉으면서 빙판에 저만의 뭔가를 표시하는 루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스하키 골리는 4차원이다’는 통념이 있죠. 이우경 선수는 어떤가요?


“저는 일단 빙판 위에서는 4차원이에요. 골을 먹어도 경기를 재밌게 풀어 가고 싶으니까 소리 한 번 지르고 풀려고 하는데 팀원들이 옆에 있다가 깜짝 놀라요. 하지만 일상에서는 ‘할 것만 하는 학생’이에요. 휴식일에는 침대에서 뒹구는 걸 제일 좋아하고, 과제나 시험 같은 필요한 것만 딱딱 챙겨요.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나요? (웃음)” 

 

# 무탈한 내일을 위해


 

인터뷰 중인 이우경 선수

 


이제 주전 골리로서 새 시즌을 맞이합니다. 목표가 궁금해요.


“정기 고연전만 이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그거 하나만 돼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고려대 명성에 걸맞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믿고 뽑아주신 거에 대한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외국 리그에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있어요. 학업적으로는 무탈하게 좋은 기억 가지고 졸업하고 싶습니다.”

 

이번 정기 고연전에 대한 각오가 남다른 것 같아요. 


“이번 정기 고연전은 제게 남은 대학 생활 3년의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발판이거든요. 2학년 첫 정기 고연전 깔끔하게 승리하고 3, 4학년 정기 고연전도 모두 이기고 싶습니다. 1-0 승리 기대해 주세요. (웃음) 제가 잘해서 이겼다는 말이 나오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완성형 이우경’은 어떤 사람이자 선수인가요? 


“아직 저와 제 인생 목표를 정의하긴 이른 것 같아요. 당장 생각나는 건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스하키를 즐기다 박수 칠 때 떠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파이팅하는 이우경 선수

 

“나중에 프로팀에 가서 정말 운동만 하면서 무탈하게 지내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덤덤하던 이우경의 눈빛이 가장 선명해진 순간이다. 거창한 목표 대신 툭 내뱉은 이 한마디에 그만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복잡한 셈법 없이 오직 운동, 그 본질에만 묵묵히 몸을 던지겠다는 뜻이 아닐까. 

 

이우경의 시선은 이제 정기 고연전을 향한다. “제가 잘해서 1대 0으로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며 씩 웃는 얼굴에는 여유마저 엿보인다. 지난 잔상은 잊고 다음 퍽만 노려보는 수문장. 무탈한 일상이 빚어낸 단단함, 이우경은 오늘도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묵묵히 골문을 지킨다.

 

 

아래 링크를 통해 관련 경기를 만나보세요!

2025 KUSF 대학아이스하키 U-리그 P.O 4강(https://chzzk.naver.com/video/10205780)

2025 KUSF 대학아이스하키 U-리그 챔피언결정전(https://chzzk.naver.com/video/10238671)

제107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대학부 결승(https://www.youtube.com/watch?v=1jR7vOWiP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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